지금 기업 현장에서 AI는 '도입'이 아니라 '소화'의 문제가 됐다. 챗GPT와 클로드 같은 범용 AI 모델이 이미 현장에 깔린 상황에서, '왜 굳이 당신네 서비스를 써야 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국내 AX 시장에서 조용히 주목받는 스타트업 탤런트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2022년 설립해 직원 11명으로 2025년 26억 원 매출을 올린 이 회사의 안찬봉 대표를 만났다.
탤런트리가 발을 디딘 시장은 수요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 안 대표는 "대기업은 이미 AI 웨이브를 한 번 겪었다"며 시장의 변화를 설명했다. "문서 자동화나 리포트 자동 생성을 보여드리면 '와, 한번 해보자' 하던 반응이 이제는 '그거 이미 해봤다'로 바뀌었습니다. AI의 1차 흥분이 가라앉고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면이 온 거죠."
BCG 컨설턴트 출신인 안 대표가 택한 방향은 '조언에서 실행까지'다. 탤런트리의 핵심 서비스 '클리브(Cleave)'는 데이터 통합부터 AI 도입 전 주기를 지원하는 종합 플랫폼이다. 일반적인 컨설팅이 조언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클리브는 고객사 워크플로와 데이터에 밀착해 맞춤형 AI 도구를 직접 제작·교육까지 지원한다. "AI를 제대로 쓰려면 데이터뿐 아니라 그 기업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찐득하게 붙어 있는 상태로 제품화가 돼야 진짜 쓰이거든요."
성과는 숫자로 나온다. 클리브를 도입한 고객사의 90%가 재계약을 선택했고, 의사결정 시간을 50% 이상 단축하거나 수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내 대표 AI 기업 업스테이지와 금융권 AI 솔루션 개발 MOU를 맺으며 파트너십도 확장했다. 높은 재계약률의 비결은 결국 도메인 지식의 축적이라고 안 대표는 강조한다. 특정 기업을 오래, 깊이 알아갈수록 AI 적용의 정확도가 올라가는 구조다.
탤런트리는 '회사를 바꾸는 회사'라는 비전을 내세운다. 안 대표는 이 비전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고 말한다. "AI 도입이 회사를 바꾸려면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술을 깔아놓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도구를 만들면서 동시에 교육도 함께 합니다." 이전 서비스 '번지'를 중단하고 클리브에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변화에 따라 핵심을 재정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으로 안 대표가 주목하는 흐름은 'AI 에이전트'의 부상이다. 범용 모델이 아니라 특정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AI가 기업 현장에 본격 도입되면, AX의 판이 또 한번 바뀔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단순히 AI를 쓰는 것을 넘어 AI가 업무 흐름 자체를 바꾸는 단계가 옵니다. 그 전환점에서 탤런트리가 기업들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작은 조직, 높은 수익성, 그리고 90%의 재계약률. 탤런트리의 숫자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좋은 모델이 아니라, 그 모델을 조직 안에 제대로 심어줄 파트너라는 것이다. 안찬봉 대표는 오늘도 그 '심기'의 기술을 다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