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한 권에서 AI 데이터로…전병욱 멘탯 대표가 그리는 출판업계 AX
AI 기업이 책을 사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종이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AI 모델의 학습이나 검색·인용에 쓸 수 있도록 정식으로 권리를 확보한 데이터를 구매하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방대한 텍스트가 있지만, 저자와 편집자의 검토를 거쳐 한 주제를 깊이 다룬 책은 AI 기업에 또 다른 데이터 공급원이 되고 있다. 문제는 중소 출판사의 도서 데이터를 모으고 권리 관계를 정리해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2025년 7월 설립된 멘탯(Mentat)은 바로 이 거래를 출판사와 AI 기업 사이에서 연결하는 스타트업이다.
전병욱 대표는 AI 연구자 출신이 아니다. 출판사 영업직으로 시작해 알라딘, 아라크네, 창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거치며 종이책이 전자책, 오디오, 온라인 서비스로 확장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겪었다. 창비에서 전자책과 오디오, 앱, 웹사이트까지 디지털 사업을 맡았던 그는 "그때 이제 출판사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래서 테크로 가자고 생각했어요"라고 돌아봤다. 이후 2025년 글로벌 벤처캐피탈 앤틀러코리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 "저작권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비즈니스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겠다 싶었죠. 그래도 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출판업계에서 쌓은 신뢰와 네트워크였다. 처음 구상한 모델은 AI가 답변할 때 책 내용을 검색·인용하고 이용량만큼 대가를 지급하는 참조·인용 라이선싱이었고, 이 모델로 앤틀러코리아의 투자도 받았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AI 기업들이 먼저 찾은 것은 학습용 데이터였고, 멘탯은 사업 우선순위를 바꿨다. 국내 AI 기업 담당자와 연락이 닿는 데만 평균 4개월가량 걸렸다. 결국 운영자금이 바닥나기 직전 글로벌 빅테크와 첫 거래가 성사됐다. "창업 이후 문제는 당연히 매출이었어요(웃음). 런웨이가 고갈되는 압박이 있었는데 거의 끝머리에서 첫 계약이 된 게 가장 고무적인 일이었고요."
현재 멘탯의 계약 출판사는 약 95곳, AI 활용 권리를 확보한 도서는 약 3만 4000종, 글로벌 AI 기업과 맺은 누적 라이선싱 계약 규모는 약 150억원이다. 최근에는 AI 기업이 계약 대상 도서를 내용별로 검색하고 데이터 규모를 토큰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멘탯 디스커버리'도 선보였다. 전체 데이터 규모는 약 80억 토큰이다. AI 기업이 굳이 비용을 들여 책을 사는 이유에 대해 전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텍스트에 비해 도서의 글은 긴 문맥이고, 구조화된 글이죠. 그리고 인간이 정제한 글이예요."
그러나 전 대표는 지금의 매출을 만드는 학습용 데이터 라이선싱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AI 모델 학습이 고도화되면 같은 데이터를 다시 사려는 수요가 줄어든다는 판단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3년을 가지 않을 거라고 봐요. 그러니 새로운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멘탯은 처음 설계했던 참조·인용 라이선싱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검색증강생성(RAG)과 연결해 호출 횟수나 처리한 토큰 수에 따라 과금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라이선스 도서 10만 종 확보를 목표로 잡았다.
전 대표는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의 차이를 책의 단위에서 찾는다. "과거에는 DX만 하더라도 권 단위 형태를 유지해 왔어요. 그런데 AX에서는 이걸 데이터로 규정하고 부분의 활용도가 높아져요." 여러 책에서 같은 주제의 내용을 골라 데이터셋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과 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라는 상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콘텐츠를 독자에게는 책으로 팔고, AI 기업에는 허락된 범위의 데이터로 공급하는 새로운 유통 경로가 생기는 것이다.
멘탯은 AI가 만든 데이터를 사람이 검토하는 '휴먼 인 더 루프' 기반 검증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전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책 데이터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AI에 필요한 데이터를 발굴·가공하고 품질과 권리를 검증하는 인프라 기업이다. 그의 시선은 현실 세계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월드 모델'까지 향한다. "언어 모델에만 갇혀 있으면 비즈니스 규모가 제한적이니까요." 출판사와 저자가 이용 범위를 통제하고 실제 수익을 돌려받는 구조를 얼마나 넓게 만들 수 있는지가 멘탯이 먼저 증명해야 할 과제다.
|